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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의 고양이에겐 눈인사만 해요.
반려동물복지센터 2018-05-01 오전 10:29:47 614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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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의 고양이에겐 눈인사만 해요

느긋한 천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한국의 고양이들에게 '휴식권'을


글. 윤정임 국장 






궁금하지만 무서운 듯한 눈빛. 한국의 길고양이들은 새끼 때부터 배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평생 맘 졸이며 사는 길고양이들.


초등학생 무렵 엄마 등 뒤에 숨어 무서워 떨면서도 꼭 챙겨 봤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전설의 고향’이다. ‘전설의 고향’이 방영하기 1시간 전 나는 꼭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 때 우리 집 화장실은 재래식이었고 나는 화장실 귀신이 있다고 믿었던 순진한 어린이였다.

언제라도 이불을 뒤집어쓸 만반의 준비를 하면 ‘전설이 고향’이 시작됐다. 드라마가 절정에 이르면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 소리가 귀를 ‘쨍’하게 울리고 연이어 하얀 연기가 나면서 귀신이 등장한다. 주로 고양이 얼굴과 오버랩 처리되고 고양이가 귀신인지, 귀신이 고양이인지 모를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 세뇌를 당한 듯 어린 시절 나는 고양이가 귀신만큼 무서웠다. 아마도 ‘전설의 고향’은 많은 아이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을 만들었을 것이다.

편견은 ‘도둑고양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도둑고양이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집에서 살지 않고 주인 없이 돌아 다니는 고양이다. 지금은 고양이를 보호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길고양이라고 부르지만 오랫동안 길고양이는 도둑고양이라고 불렸다. 마치 아무런 노력 없이 우리가 가진 것을 훔쳐 살아가는 교활한 존재로 생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양이는 주술적인 동물로 여겼다. 주술을 통해 사람을 저주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우는 등 저주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또한 고양이의 기질을 여인과 동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음침하고 앙칼진 왜곡된 모습으로 말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옛날부터 고양이도 함께 핍박 받았다

 

 
태국에서 만난 고양이. 손을 ‘스윽’ 대니 얼굴을 부비며 편안하게 몸을 뒹굴거렸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에는 특수한 상황이 더 있다. 바로 몸이 유연한 고양이가 관절에 좋다는 속설이다. 2015년 5월, 길고양이를 불법 포획해 ‘나비탕’ 재료로 이용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밝혀진 것만 무려 600마리.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살아 있는 고양이를 끓는 물에 담가 익사시키는 잔인한 도살 방법이었다. 2016년 4월, 창원지방법원은 끓는 물에 600마리 고양이를 죽인 범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동물자유연대와 시민들은 재판부의 엄중한 처벌을 바라는 탄원 서명을 받았고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이 내려졌다. 사건의 중대함에 비하면 이건 처벌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은 알고 보면 모두 안 믿어도 되는 미신이고 속설이다. 고양이는 영리하고 명랑하며 애교가 많은 동물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거침없이 사람에게 다가와 냄새 맡고 다리에 몸을 부빈다. 어느 순간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며 놀아달라고 눈을 반짝인다. 고양이는 원래 이런 동물이다. 길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근처에서 길고양이를 자주 본다. 도심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기에 이만큼 안전한 곳도 없다.



필리핀 여행 중 한 식당에서 만난 고양이. 사람이 있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제 할 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는 어떤가. 대부분 몸을 잔뜩 웅크려 꼬리를 말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무섭다는 표현이다. 우연히 마주치면 꼬리를 곧추세우고 정지 자세로 오도가도 못한다. 놀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 나온 고양이를 보고 놀랐다면 이 작은 생명은 우리보다 훨씬 더 놀란 것이다. 빠르게 움직여 도망가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고양이들만의 처절한 생존 전략이다. 느리고 여유로운 자태와 느긋한 천성의 고양이를 우리 사회가 빠르고 바쁘게 만들어 놓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길고양이만의 특징이다.
 
따뜻한 봄이 왔다. 길고양이들이 일광욕 하는 모습을 겨울보다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사람 피해 도망 다니느라 평생 마음 졸이며 바쁘게 움직이는 길고양이에겐 하루 중 유일한 호사의 시간이다. 주린 배와 아픈 몸으로 햇볕을 쪼인다. 햇볕은 공짜니까. 혹 예쁘더라도 멀리서 눈인사만 건네자. 한 발자국만 다가가도 어렵게 찾은 명당 자리를 포기하고 도망간다. 빠르게 움직이느라 배는 더 고프고 하루는 길기만 하다.

 

 
미국 하와이 국립공원에서 만난 길고양이. 
하와이에서 길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 공원에 방사한다. 
 일정한 시간에 밥을 줘 생존을 돕고 중성화 수술로 개체수를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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