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이야기
[Animal Insight] 인류세의 '동물 문화'를 보호해야 할까?
- 2026.05.20
Animal Insights | 관광객이 망친 위, 흙으로 달래는 지브롤터 원숭이
원문읽기 I Frater, J. et al. (2026). Geophagy in Gibraltar Barbary macaques is a primate tradition anthropogenically induced. Scientific Reports.
지중해 연안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사는 바바리원숭이. 관광객이 주는 음식을 해독하기 위해 흙을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 코먼즈.
🐮 핵심 내용은?
영국령 지브롤터에 사는 바바리원숭이(Macaca sylvanus)는 관광객이 주거나, 관광객에게 빼앗아 먹는 초콜릿·감자칩·아이스크림 때문에 망가진 속을 붉은 흙(terra rossa)을 일부러 먹는 행위로 달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2022~2024년 5차례 현장조사로 처음 체계적으로 관찰한 이 '흙 먹기(geophagy)'는, 다른 마카크 종이나 다른 서식지 무리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나타났고,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과 정크푸드 섭취가 많은 무리에서 더 빈번했다. 연구진은 이것을 단순한 섭식 이상행동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풍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전승되는 영장류 '문화'의 탄생으로 해석한다.
- 지브롤터 원숭이들의 흙 섭취 횟수는 주당 12회 이상으로, 지금까지 보고된 다른 영장류 종이나 타 지역의 마카크 원숭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 관광객과 거의 접촉하지 않는 한 무리에서는 흙 먹기가 단 한번도 관찰되지 않았다.
- 이 행동은 무리 내에서 관찰과 모방을 통해 전수되는 사회적 학습의 결과로 보이며, '에이프스 덴(Apes Den)'이라는 특정 무리는 흙 대신 아스팔트의 타르를 파먹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 상세 분석
정크푸드가 만들어 낸 원숭이의 새로운 식습관
지브롤터는 유럽 유일의 야생 영장류 서식지다. 약 230마리의 바바리원숭이가 바위산을 누비며 살아가는데, 이들은 관광객이 건네거나 가방에서 낚아채는 음식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 야생 원숭이가 본래 먹어야 할 씨앗·과일·잎과는 거리가 먼, 당과 지방과 염분은 높고 섬유질은 거의 없는 식단이다.
연구진이 관찰한 흙 먹기는 이 식단의 부산물처럼 보였다. 흙 먹기 빈도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여름에 정점을 찍었고, 정크푸드 섭취가 많은 무리일수록 더 자주 흙을 먹었다. 연구진은 이 행동의 적응적 기능을 두 가지 가설로 검토했다. 흙의 점토 광물이 위장벽을 코팅하고 해로운 화합물을 흡착해 장 내미생물군을 다시 잡아주는 '보호 기능', 그리고 부족한 미네랄을 보충하는 '보충 기능'이다. 데이터는 보호 기능 가설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적응과 발명, 인류세가 빚어내는 새로운 문화
흥미로운 것은 흙의 선택이 무작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리마다 선호하는 흙의 종류가 일관되게 달랐다. 어떤 무리는 붉은 점토만 골랐고, 다른 무리는 노란 흙이나 검은 흙을 먹었다. 흙 먹기가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무리별 선호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이것이 개체가 우연히 습득한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전승되는 패턴임을 시사한다. 영장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정의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비교를 위해 연구진은 다른 26개 바바리원숭이 서식지의 자료를 함께 살펴봤다. 흙 먹기 자체는 다른 곳에서도 드물게 관찰되지만, 지브롤터처럼 빈번하고 인간 식품 섭취와 직접 연결된 형태는 다른 어디에서도 보고된 적이 없다. 따라서, 이 흙 먹기는 지브롤터라는 특수한 인간-영장류 접경지대에서만 출현한 국지적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지브롤터 원숭이는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식문화를 발명했다 © 위키미디어 코먼즈
💡 AFF's Comment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원숭이가 영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세에서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다시 짜이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생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으로 전제하지만, 지브롤터의 원숭이에게 야생이란 이미 관광객의 손에서 떨어진 초콜릿이 일상의 일부인 풍경이다. 그 풍경 안에서 동물은 수동적이지 않고 피해자도 아니다. 새로운 음식에 새로운 대응을 발명하고, 그 대응을 서로에게 가르치며, 한 세대 만에 '문화'를 만들어낸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이 행동을 단순한 섭식 이상이 아니라 '인류세적 풍경에 대한 기능적·문화적 응답(a functional and cultural response to an anthropogenic landscape)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가져온 음식이 원숭이의 장내 미생물계를 흔들고, 그 불편이 새로운 행동을 낳고, 그 행동이 동료들 사이로 전파되어 무리의 전통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연구는 다시 한번 낯선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야생동물의 '문화'를 보호한다고 말할 때, 정확히 무엇을 보호하는 것일까. 인간의 영향이 닿기 전의 원형을 말하는가, 아니면 인간과 부대끼며 새로 만들어진 전통까지 포함하는가. 지브롤터의 붉은 흙을 골라 먹는 원숭이의 습관은, 인간이 만들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문화다. 그것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야생인가, 아니면 가치없는 인공의 산물인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우리가 그어왔던 선은 유효한가. 남종영 운영위원(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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