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법을 묻다] 여섯번째 주제는 전시·체험동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라쿤카페, 미어캣카페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 시내 곳곳에서는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이색 카페를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동물 카페는 아이들과 연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귀엽게만 보이는 야생동물,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대다수의 카페에서 동물들은 제대로 된 은신처 하나 없이 하루종일 강제로 체험에 동원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빨을 뽑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생동물 카페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아 규제 자체가 부재한 상황인데요. 이곳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카페 관계자를 처벌할 수는 없는지 미어캣씨의 사례를 통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어느 카페에서 살고 있는 미어캣입니다.
전 아주 어릴 적 사람들에게 붙잡혀 강제로 엄마 곁을 떠나 한국에 왔어요. 적응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카페에 오는 사람들마다 절 만져보려 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요. 심지어 며칠 전 카페 사람들이 새로 온 라쿤이의 이빨이 너무 날카롭다며 쇠붙이로 갈아버렸다고 해요. 도대체 이래도 되는건가요?
👩💼뜨거운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막에서 집단생활을 해야 할 미어캣씨가 낯선 도시의 좁은 실내에서 날마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느라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까요. 기본적으로 습성이 다른 동물들이 좁고 오픈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일텐데 라쿤씨는 심지어 이빨까지 갈리고, 듣자하니 송곳니가 아예 뽑히는 라쿤씨의 동료들도 있다던데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네요.
미어캣 씨가 하신 말씀들을 정리하면 그 카페에서는 납치와 감금, 폭행, 상해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현행법상으로는 규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납치와 감금에 대해 말씀드리면, 미어캣씨나 라쿤씨은 한국에서 야생동물에 해당되는데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등에 따르면, 야생동물의 국경간 이동 절차(수입)가 까다롭지 않고 국내에 들어온 이후에도 특별한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국제적 멸종 위기종이 아니면 육안으로만 검사 후 손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별다른 절차 없이도 사람들 앞에 전시나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카페로 이동된 후의 감금, 폭행, 상해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원은 최소한의 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동물카페와 동물원이 다를 게 뭐냐고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은 10종 또는 50개체 이상의 동물을 보유한 시설에 대해서만 동물원으로 등록하게 하고, 동물에게 적정한 서식과 환경을 제공했는지 등을 보고하고 검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카페에 미어캣씨과 다른 동물들이 모여 살긴 하지만, 아마도 10종 또는 50개체를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동물원법의 적용을 받기는 어렵게 됩니다.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그 카페의 운영자는 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관리나 규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설령 동물원 기준을 초과하는 큰 규모의 카페라 하더라도 서류상 등록 요건만 갖추면 되기 때문에 규제가 헐거운 편이고요.
한국에는 ‘동물보호법’도 있지 않냐고요? 네 맞아요. ‘동물보호법’은 동물들에게 적절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도록 정하고 있지요. 하지만 각각의 종마다 무엇이 필요하고 적절한지까지를 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러니 미어캣씨나 라쿤씨가 생활하기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동물학대로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겁니다. 무엇보다 ‘동물보호법’은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을 이용해 ‘동물전시업’을 하는 경우에만 일정한 기준이나 절차를 두고 있는데, 여기서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은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등 6종 뿐이거든요. 따라서 반려동물이 아닌 미어캣씨나 라쿤씨은 동물전시업상 동물에 포함되지 않게 되고, 동물보호법의 적용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야생생물법이나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어요. 라쿤씨에게 아무런 건강상의 사유없이 송곳니를 발치했다면, 그것은 야생생물법 내지 동물보호법의 학대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체의 일부를 채취하는 행위, 도구·약물을 사용하거나 물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고, 동물보호법에서는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를 정당한 사유의 예시로 들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 전시·체험을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해 야생동물의 이빨을 뽑 행위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쿤씨에게 전할 말이 있어요.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그 일환으로 2020년 6월 1일부터는 라쿤씨의 동료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국경간 이동(수입)할 때는 허가를 받도록 바뀌었어요. 만일 누군가 라쿤씨와 동료들을 유기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게끔 되었고요. 비록 그렇게 된 이유는 환경부에서 라쿤씨들을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로 지정했기 때문이어서 기분은 나쁘겠지만 무분별하게 라쿤씨들을 이동시키고 괴롭히는 관행은 줄어들게 될 거라고 기대해봐요.
📜관련법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동물원 및 수족관의 범위)
①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시설을 말한다.
1.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야생동물 또는 「축산법」 제2조제1호에 따른 가축을 총 10종 이상 또는 50개체 이상 보유 및 전시하는 시설.
🔎관련사례
이빨 뽑히고, 시멘트 바닥 긁고…동물카페에 ‘야생’은 없다 (한겨레신문 2017.11.09)
대다수 야생동물카페에서 사육하는 라쿤들은 작은 철제 케이지에 전시되거나 송곳니가 발치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카페 직원에게 묻자 “야생성 강한 라쿤은 동물병원에 가서 송곳니를 뽑는다”고 말했다. 북극여우와 은여우가 있는 카페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외부에 이들을 방치해두고 얼음 조각들을 던져줬다.
이런 야생동물카페는 대만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고, 지금은 전 세계로 퍼져 있다. 북미와 유럽 지역은 주로 고양이 카페가 다수이며 소수의 개 카페가 운영 중이다. 최근 영리 목적의 ‘펫 카페’가 늘어나는 조짐이 있지만, 유기동물 보호와 입양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 많다.
한편 대만, 일본, 싱가포르, 태국, 홍콩, 한국 등은 개·고양이에서 다양한 야생동물 테마로 이동 확산하는 추세다. 한국의 동물카페는 관련 법규의 강도가 약하거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가운데 신종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동물, 법을 묻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