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복지 구축

복지 사각지대에 위치한 말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안전망 구축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을 사용한다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사용한다면?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뜻입니다. 잘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해 힘을 더한다는 의미로 우리가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 온 표현입니다.


그런데, 말에게 채찍질한다고 정말로 말이 더 빨리 달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채찍의 사용과 경주에서 말의 실제 속도 간의 유의미한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고통만 더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2011년 호주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기수들은 말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는 결승선 200~400m 전에서 채찍질을 더 자주, 더 많이 하는데 실제 말들은 결승선 400~600m 전에서 가장 높은 속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말들은 채찍질하지 않는 구간에서 오히려 가장 빠르게 달리며, 이미 지쳐서 속도가 떨어진 말에게 채찍을 사용한다고 해서 말의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Evans DL, McGreevy PD(2011). 'An Investigation of Racing Performance and Whip Use by Jockeys in Thoroughbred Races'. PLoS ONE 6(1): e15622.)


또한 이 연구는 채찍의 사용이 경주마의 성적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경주에서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던 말들에게는 채찍을 사용하고, 결승선 400m 전에서 9위, 200m 전에서는 4위를 기록한 말에게는 채찍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채찍을 사용하지 않았던 말이 오히려 1위로 경주를 마쳐, 채찍 사용 보다 기수의 전략과 말의 상태가 경주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해당 연구를 통해 말에게 채찍질하면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통적 인식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말은 채찍질을 당할 때 사람이 채찍질을 당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통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2020년 국제 학술지 ANIMALS에 게재된 연구*에서 말과 사람의 둔부 피부 표피층 두께와 신경 밀도를 비교해 보여주는 사진을 살펴보면 말과 사람 간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의 피부 진피는 사람보다 조금 두꺼운 편이지만 표피와 신경 말단의 구조는 사람과 유사해 채찍이 주는 통증을 비슷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출처: Tong L, Stewart M, Johnson I, Appleyard R, Wilson B, James O, Johnson C, McGreevy PD(2020). 'A Comparative Neuro-Histological Assessment of Gluteal Skin Thickness and Cutaneous Nociceptor Distribution in Horses and Humans'. Animals 10(11): 2094.)


그럼, 경마 문화가 발달한 해외국가에서는 채찍 사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요?

노르웨이는 1986년 세계 최초로 경마 중 채찍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후 2009년 규정 개정을 통해 기수는 2세 경주 및 장애물 경주에서만 채찍을 휴대할 수 있고 3세 이상 평지 경주에서는 채찍 휴대도 전면 금지했습니다. 뉴저지주는 미국 최초로 2020년부터 비상 상황에만 채찍 사용을 허용했고, 스웨덴 역시 2022년부터 격려 목적의 채찍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영국은 2022년부터 평지 경주에서는 6회, 점프 경주에는 7회로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채찍 사용 기준을 변경해 채찍 사용 횟수를 기존 20회에서 15회로 줄이고, 결승선 직전 마지막 직선주로에서만 채찍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횟수를 줄이긴 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높은 빈도의 채찍질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단순 횟수 제한에서 나아가 ‘위험 회피 목적 외 채찍 사용 금지’와 같은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인간의 유희를 위해 사용되는 경주마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더해서는 안 되며 경주마를 책임감과 존중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제안, 시민 인식 개선, 그리고 법·제도 개정을 통해 경주마가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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