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후기

가족을 만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온센터 입양 동물들의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2021년 8월 12일 우리집에 와서 행복만 안겨주었던 토리. 2026년 6월 15일 07시 50분 무지개다리 건너다. 만성신부전으로 327일 투병했다. 토리에 대한 추억을 중1 딸아이가 쓴 글 공유합니다. ‐----------------------------------------------------------------- 제목에 토리를 닮은 이모티콘을 쓰려 했지만, 갈색 푸들 이모티콘은 없었다. 2026.6.14 1학년 무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집 안에는 힘 없이 숨만 색색쉬는 토리가 안방 바닥 매트에 누워 있었다. 이미 사전에 토리가 많이 아프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상 토리가 죽다 살아나길 반복한 것이 오래기에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한참 전 부터 되어 있었다. 핸드폰을 쓰지 못 하는 무빙 기간에도 토리가 많이 아플 것이고,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힘 없이 누워있는 토리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쓰다듬었다. 역시 토리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 했다. 그리고는 가족과 인사 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토리에게 다시 갔다. 토리가 일어나려 하는데 토리가 누워있는 매트가 미끄러운 재질인 탓에 계속 미끄러져 일어나지 못 했다. 나는 토리를 조심히 들어 세워주었다. 다만 토리는 힘이 없었다. 내가 없는 3주 동안 토리의 상태는 많이 심각해져 있었다. 그래서 토리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 아니, 중심을 못 잡았기 보다는 그냥 쓰러졌다. 분명 3주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똑같이 쓰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 개가 눕는 자세로 쓰러졌다. 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앞다리도 괴상하게 벌리고, 허리도 불편하게 힘 없이 비틀어져 뒷다리도 대충 놓았다. 솔직히 충격먹었다. '어떻게 자세가 이렇게 되지?' '강아지가 할 수 있는 자세인가?'하고. 그래서 다시 푹신한 이불 쪽에 눕혀주었다. 일어날 힘은 전혀 없어 보였다. 눕혔는데도 그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내가 자세를 바꿔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방에 들어갔다. - 엄마가 병원에 갔다 온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전화가 왔다. 토리가 병원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오늘을 넘기지 못 할 것 같다고 하셨다고. 이번에도 딱히 감흥은 없었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흐느꼈다. 감흥은 없었다. 알겠다고 했다. 엄마는 토리가 병원 말고, 평소 지내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가길 바랬다. 의사 선생님이 지금 죽지 않도록, 적어도 집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주사를 엄청 놓고 있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도 엄마는 피자 가게를 들려 내가 사달라고 했던 피자를 사왔다. 피자는 내가 들고 집에 올라갔다. 집에 가서 피자를 먹고 있었다. 엄마가 집에 토리와 들어왔다. 엄마 눈가가 촉촉했다. 엄마는 토리와 친한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토리를 방석에 눕혀주었다. 나는 토리를 기다렸다. 토리는 참 끈질기게도 버텼다. 아픈지 얼마나 됐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의 토리 투병 일지를 본다면 쓰여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이 어렸을 때 엄마에게 5년 넘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랐다. 결국 우리는 강아지를 데려왔다. 사실 나는 포메라니안이나 시츄를 키우고 싶었지만, 엄마는 털 빠짐 없는 푸들을 키우자고 해서 그냥 푸들을 키우기로 했다. 우리는 사지 않고 보호소에 가서 입양했다. 보호소 선생님이 갈색 푸들 3마리를 데려오셨다. 뭐랄까, 흰색 푸들이 키우고 싶었지만 몇 일 전에 입양 갔다고 하셨다.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한 귀엽고 털이 복슬복슬하고 막 그런 강아지는 딱히 없었다. 내심 실망했던 것 같지만 좋았던 것 같다. 푸들 3마리가 있었다. 푸들 2마리는 즐겁게 뛰어 다녔지만 한 푸들이 소심해 보였다. 그 아이가 좋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다. 오빠도 똑같았다. 다만 그 강아지는 심장 어쩌구, 병이 있었다. 매일매일 약을 먹여야 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계속 고민하다 토리를 짚었다. 토리가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어린 나에게 첫번째로, 유일하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고 좋아하던 건 토리였다. 그래서 토리를 입양했다.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우린 토리라고 불렀지만, 알고 보니 임시 이름은 코리였다고 한다. 우리 집은 그냥 토리라는 이름이 좋아서 토리로 하기로 했다. 토리를 데려온 내 나이가 몇살이였더라,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였던 것 같은데. 토리를 데려오고 끈질기게 토리를 괴롭혔, 아니 놀아줬다. 내 기준에선 놀아준거였다. 토리 산책도 가보고, 토리가 사료를 안 좋아해서 정성스레 토리 전용 레시피를 만들었다. 밤에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탁탁거리는 발소리가 갈 곳 잃고 서성거리면, 뭐가 필요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가서 토리를 본다면 눈에 바라는 것이 훤히 보였다. 똥오줌 마렵다 (그 때는 배변패드가 없어서 밖에 나가서 싸야했다.), 배고프다, 목 마르다. 토리가 배고플 때에는 당연히 사료가 밥 그릇에 담겨있었다. 토리는 사료를 싫어했지만 내가 해주는 밥을 좋아했던 걸까. 사료에 물을 말아서 전자레인지에 15초 데우고 섞어주면 맛있게 다 먹었다. 그래도 배고프면, 더 해줬다. 가끔은 간식을 원하길래, 엄마 몰래 간식을 주기도 했다. 토리 간식은 매번 바뀌었다. 가장 오래 좋아하고 고정이였던 간식은 정수기 뒤에 칫솔 치약으로 토리가 싫어하는 양치를 하고 나면 주는 양치 간식, 그리고 토리가 너무 좋아해서 생일 때 간식을 쌓아 케이크를 만든 치킨, 닭고기... 뭐 그런 납작한 간식이였다. 그 간식을 꺼내기만 하면 들떴다. 점프해서 내 간식을 가져간 적도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토리가 '앉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나 덕분일거다. 죽기 직전까지도 '앉아'밖에 못했던 바보 토리. 내가 끈질기게 가르친거다. 내가 가르칠 때 손동작을 같이 해서 손동작을 같이 해야만 앉았다. 이건 좀 웃기네. 생각해보면 멀리 있는 토리를 부를때 높은 목소리로 "토리야. 토리! 토리 일로와! 똑똑똑똑" 박수치면 토리가 왔다. 오는게 점점 귀찮아 보였지만 ㅋㅋ 그래도 오면 토리 볼 부비부비하며 좋아했다. 토리는 박수 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방금 설명한 것도 그렇고, 내가 박수를 치며 "어구, 아이고 예뻐! 아이구 잘했어! 아구 귀여워!" 리듬감 있게 박수치며 말하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토리는 엄마를 제일 좋아했고 애교도 엄마 제외 별로 안 부렸지만 내가 그럴 때 만큼은 엄마에게 애교 부리듯 해줬다. 잘 때도 유튜브에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악, 강아지가 잠 잘오는 음악을 검색해서 틀어줬다. 무수히 많은 계절이 지나고 어느 날, 토리가 평소랑 달랐다. 가족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했다. 어쩌면 그게 당연했다. 내가 보기에도 바뀐게 딱히 없었으니까. 평소랑 달랐던 걸 설명하자면 눈빛 정도 밖에 없어서. 다만, 감이 확실하게 왔다. 그니까, 평소랑 다르게 확신했다. 그래서 병원을 가자고 했다. 엄마는 믿지 않았다. 어쩌면 믿지 않은게 아니라 돈과 시간이 부족해서, 아까워서 안 간 걸 수도.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병원 가 보라니까. 토리 목숨이 중요해, 돈이 중요해?" 지금 생각해보면 극단적이게 말했다. 엄마는 알았다고, 병원 가보겠다고 했다. 엄마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날이 지날 수록 토리가 점점 더 이상해져 갔다. 간식도 안 먹었고, 심지어는 제일 좋아하는 간식도 안 먹었다. 그 때부터는 엄마도 토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매일 병원 갔다 왔냐고, 빨리 갔다 오라고 부추겼지만 엄마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그 때는 증상이 미세했어서. 언제 갔는진 기억 안 나지만 쓰러졌을 때였나? 아니면 힘들어 하던 때? 증상이 오던 때? 어쨌든 그제서야 병원에 갔다. 병명은 '신부전' 엄마 말로는 밥 못 먹고 굶다가 죽는 병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 때부터 약을 먹이기 시작했고, 최애 음식인 고구마도 먹지 못 했다. 무슨 수치가 올라가서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또 심각해져서 병원에 갔다. 이젠 집에서 수액을 맞혀야 했다. 매일 아침, 밤에 맞혔다. 토리의 상태는 안 좋아지기만 했고, 더 이상 중심을 잡지 못 했다. 안락사를 하기로 했다. 안락사 당일 날 아침, 병원 가기 전 갑자기 뿅하고 살아났다. 이불에 뒹굴기도 하고 산책도 뛰어서 갔다. 안락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잠깐 좋아진거지 며칠 후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졌다 많이 안 좋아지고 좋아졌다 많이 안 좋아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그냥 안 좋아지고만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빙을 갔다. 2026.6.15 토리는 죽지 않았다. 새벽 3시에 깼는데, 토리의 가쁜 숨소리가 아직 들렸다. 바지를 갈아입고, 화장실에 가고, 물을 먹으려 했다. 토리를 보낼 마음의 준비는 다 해놨으면서 무서웠는지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 했다. 내가 내려갔는데 숨소리가 멈추면 어쩌지? 하고. 결국 내려갔다. 무서워서 방에서 안 자고 아빠 옆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깨웠다. 일어나자 마자 엄마에게 물었다. "토리는?"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다시 잤다. 잠에서 깼다. 엄마가 펑펑 울며 들어왔다. "토리 지금 갔어." 지금 이였는지 방금 이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별 감흥 없었다. 3시에 생각했었다. 이번 새벽을 넘기지 못 할 것이라고. 다만 넘겼다. 엄마 말로는 아침에 계속 경련해서 설거지 하다가 가보니까, 토리가 엄마를 보더니 숨을 2번 들이쉬고 갔다고 했다. 토리가 죽으면, 엄마가 힘들어 할 것을 알고 있었다. 토리가 아프고 어느 날 한 웹툰을 발견했다. '강아지 별'. 대충 훑어 보았다. 주인공은 강아지. 갈색 푸들. 이름은 토리. 놀랐다. 우리 토리랑 똑같아서. 내용은 죽은 토리가 강아지 별에 가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언니(주인)를 기다리는 내용이였다. 엄마한테 소개시켜 주었다. 1화 첫 부분은 슬프다. 그래서 엄마가 안 보려 했다만, 그 부분 스킵하고 토리가 강아지 별에 도착한 부분을 보여줬더니 웃었다. 밤마다 들리던 탁탁 소리가 시끄러워서 아빠가 혼낸 것, 올올 거리며 뭔가 바라는게 있거나 삐졌을 때 내는 소리, 원래 짖지 않지만 초인종 소리만 들으면 짖던 것, 산책 가자고 하면 기뻐하던 것, 오빠랑 나랑 서로 산책 가기 싫어서 미루던 것, 할머니가 토리 털 잘라주던 것, 실수로 젖꼭지 자른 것, 토리 귀에 바람 불편 간지러워 하던 것, 빵 굽던 것, 풀을 뜯어 먹던 것, 고양이를 무서워 하던 것, 엄마가 오면 뛰어가서 난리 치던 것, 안방 이불에 자리를 피고 눕거나 또는 뒹굴던 것, 공을 던지면 바보라 가져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쫒아가서 놀던 것, 터그 놀이를 하던 것, 눈을 피하려던 것, 제설제를 피해 다녔던 것, 다이소에서 강아지 리본 머리핀을 사서 꽂아줬던 것, 귀 환기시키려고 귀를 위로 묶었던 것, 배변 패드를 갈아주었던 것... 이제는 배변 패드도, 간식도, 수액도, 주사 바늘도, 소독제도, 공도, 장난감도, 토리 옷도, 토리 패딩도, 목줄도, 똥 봉투도, 방석도, 미끄러질까 깔아놓은 수 많은 매트도, 토리 빗도, 사료도, 약도, 이미 뜯기고 헌 피카츄 인형도 필요가 없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신부전 투병 372일만에 토리(구 코리, 곤지암-84)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



댓글

정인열 2026.06.18

배따루 님 따뜻한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배따루 2026.06.17

이제는 지나가버린 많은 순간들과 기억들이 토리 가족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남아있을지 느껴집니다. 토리도 토리 언니도 꼭 안아주고 싶네요. 토리가 평안하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