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가 사실상 상재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반복되는 대규모 살처분 정책의 한계를 짚고 백신 도입과 구조적 전환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지난 7월 4일에 열렸다.
동물자유연대와 살처분을 반대하는 생명들의 연대(이하 살반연)는 7월 4일(금) 오후 2시 재단법인 숲과나눔에서 「왜 한국은 아직도 ‘살처분’에 갇혀 있을까? : HPAI 살처분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후원했으며, 송치용 가금수의사회장이 좌장을 맡았다.
이번 토론회는 “백신 기술이 있는데 왜 한국은 여전히 살처분에 의존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25~2026년 겨울 HPAI 유행 기간 동안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해 1,513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발생은 매년 반복되고, 발생 시기는 점차 앞당겨지고 유행 기간 역시 길어지면서 기존의 ‘박멸 중심 방역’ 전략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HPAI는 ‘넥스트 팬데믹’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반복되는 살처분을 넘어 예방 중심의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시급하다.
해외의 국가들은 백신을 도입하는 흐름으로 전환하고 있다. 산안마을 협동조합 소속의 독립 연구자 세레나 마라니노가 '해외의 HPAI 백신 개발 동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 최근 백신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사례와 함께,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백신 도입을 권유하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진 중인 '원헬스 기반 글로벌 백신 전략'을 소개했다.
한국은 HPAI 백신 기술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감염 개체와 백신 접종 개체를 구분할 수 있는 차세대 DIVA 백신 플랫폼과 대량접종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긴급 백신 제도 역시 법적으로 마련돼 있다. 그러나 2003년 국내 첫 HPAI 발생 이후 지금까지 예방적·긴급 백신 접종은 단 한 차례도 시행되지 않았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내 대표 백신 개발 기업 바이오포아의 조선희 대표는 한국 HPAI 백신 개발 동향과 현장 적용 가능성을 발표했다. 조선희 대표는 "백신으로 인해 생긴 항체와 외부감염된 바이러스를 구분할 수 있는 DIVA 백신을 과학적 예찰 프로그램의 운영과 함께 도입한다면 질병을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토론에는 살처분 정책의 영향을 직접 경험하거나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다. 김재홍 대한산란계협회 총괄국장은 농가와 지역사회가 반복되는 살처분의 부담을 떠안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했고, 성미선 팔당두레생협 이사장은 '소비자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살처분을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 돌아봐야 된다는 시민과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체계에 대해 토론했다. 배슬기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규모 살처분 방식이 지속가능한 대응인지 질문하며 중기적 관점의 인도적 백신도입, 장기적 관점에서 방역정책을 구조적으로 전환할 것과 축산업 축소를 이야기했다.
주최 측은 “고병원성AI 대응은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가, 소비자, 시민사회, 산업계, 환경단체, 정부가 함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라며 “이번 토론회가 백신 도입 여부를 넘어 지속가능한 방역체계와 축산 시스템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