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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가 꿈꾸는 '동물에게 더 나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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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똘아인가요?
- 안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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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1
10월의 첫째 날.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면 길냥이들 출석율이 저조하니 늦잠을 잔김에 더 늑장을 부렸다.
그런데 단골 백설이가 무성한 화단 속에서 얼굴을 쓰윽 내민다.
털이 젖은 채로.... 미안한 마음.
캔을 챙겨주고 공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사건이 터졌다.
오늘 오전에 공원 연못의 물을 뺀 모양이다.
그런가보다 하는데 이상하게 물빠진 연못 주위에 우산 쓴 아이들이 모여 웅성댄다.
무슨 일인가...싶어 가서 보니.
맙소사. 바닥을 드러낸 연못 여기저기에 관상용 금붕어와 물고기를
숨을 헐떡이고 있지 않은가. 내 작년에 구청에 민원까지 올려 수중생물은 안전히 옮긴 후
물을 빼겠다는 담당자의 답변을 들었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공원 관리인 아저씨는 나 몰라라 풀만 베고.
나는 근처에 나둥굴고 있던 테이크 아웃 음료수 잔을 들고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미끄럽고 울퉁불퉁 돌멩이들 투성이인 연못속으로. 문제는 한 두마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십마리의 관상어들이 숨을 헐떡이고 있거나 그나마 남은 수풀속 웅덩이에 몰려 퍼덕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죽게 내버려둘 심산인 모양이었다.
나는 컵에 물고기를 줏어 담아 물이 비교적 남아 있는 위쪽 웅덩이로 임시로 옮겼다.
곧 죽을 것 같던 물고기들은 물에 넣자 다시 유유히 헤엄을 쳤다.
주변 사람들은 다 나를 이상한 여자 쳐다보듯 쳐다보고 그 와중에 초딩들은 연신
''아줌마 저기도 있어요.'' ''저 미꾸라지도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그 와중에 애들한테 ''젠장! 난 아줌마가 아니야!''라고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슬프고....
그 와중에 공원에서 밥 먹는 태비와 삼색이는 연못안까지 따라 들어와 간식 달라고 양양대고...
연못에 연결된 분수대 위쪽에는 꽤 큰 물웅덩이가 있다.
높은 위치라 관리인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웅덩이 겨울에도
그곳의 물은 빼지 않아서 길냥이들이 물을 마시는 곳. 깊고 넓어서 물고기들을 옮기기 딱 좋았다.
달리 옮길 방도도 없었고. 낙엽이 쌓이면 겨울을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중일은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한 시간 가량 연못 바닥에서 물고기들을 주워 옮긴 것 같다.
물고기들을 컵에 옮겨 비에 젖은 바위를 몇 개나 올라 타서 웅덩이로 옮겨줬다.
그짓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따위는 무시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공원에 들러 웅덩이를 보니 금붕어들이 떼를 지어 평화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생사의 기로에 섰던 녀석들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
그걸 보니 마음이 좀 생숭생숭하다
집에 돌아오니 운동화는 연못의 진흙으로 엉망진창이다. 그걸 보면서 문득 스치는 생각 한 개.
-아.난 정말 똘아인가봐.....
-이상은 저의 오늘 블로그 일기입니다.
지금 구청에 민원을 올리고 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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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화 2015.10.12
ㅎㅎㅎㅎ 절대 똘아이 아니에요~!!
안혜성 2015.10.04
결국 오늘 수조를 사서 여과기까지 달아 거실에 놓아두었더니 잘 들 적응하고 있어요.
이정수 2015.10.04
정말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네요..생명 경시 풍조는 후진국의 잔해가 아닌가 싶습니다만...혜성님 같은 분이 마니 계셔서 바람직한 풍토를 가꿔나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학수고대해봅니다.
안혜성 2015.10.03
앗. 용현님 작년에도 은평구청 근처에서 얼핏 뵌것 같은데 근처에 계시나요?
임나혜숙 2015.10.02
안혜성 아가씨 쵝오!!!
김용현 2015.10.02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셨네요. 근처에 있으면서도 달려가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경숙 2015.10.02
우리 나라의 현실 착잡합니다 작은 생명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면 세상이 이토록 엉망진창이진 않을 텐데요 혜성님 고생 많았습니다 ㅠ
안혜성 2015.10.02
현장에서 죽은 물고기가 다수입니다. 어제 제가 한쪽으로 치워놨어요. 나머지 녀석들만 급한대로 위쪽 웅덩이로 옮겼는데 곧 추워지니 걱정입니다. 매년 연못 물을 뺄때 관리자없이 인부들만 나와 수중생물에 대한 대비책은 전무했습니다. 제가 오늘 사진촬영을 하겠습니다.
부산지부 2015.10.02
동물보호법상 동물에는 어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 제외). 연못 내의 어류를 옮기지 않고 물을 뺄 시에 어류들의 폐사가 충분히 예상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조치 없이 물을 빼서 어류들이 폐사하게 되었다면 동물보호법 8조 동물학대 등의 금지 조항 위반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하겠는데요. 관건은 물고기가 현장에서 죽었느냐와 폐사우려에 대비한 조치가 없었냐가 되겠습니다. 은평구청 공원녹지과와 더불어 생활경제과에도 민원제기 하실 수 있으며, 관건에 대한 내용이 확보 된다면 활동가가 직접 은평구청에 공문을 보내거나 사실 확인 후 경찰 고발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안혜성 2015.10.01
구청장에게 바란다나 공원녹지과에 민원신청하시면 될거에요.
안혜성 2015.10.01
은평구청이에요, 은평예술원 앞 생태공원 연못에서 생긴 일이랍니다.ㅜㅜ
박경화 2015.10.01
혜성님... 똘아이는 그 사람들이죠... 죽거나 말거나... 나참... 어느 구청에 민원 넣으면 되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