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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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슴, 오소리...다음 '데스노트'는 누구인가요?




지난 6월 19일, 경기도 하남시는 환경부에 오소리의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정식 건의했습니다. 하남시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현재까지 총 13건의 오소리 관련 시민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방어 본능이 강한 오소리는 평소 사람을 피하지만, 위협을 느끼면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행법상 오소리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포획이 금지돼 있지만,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될 경우 법 제23조에 따라 적극적인 포획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재산상 피해 등을 이유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있는 종은 참새, 까치, 고라니 등이며, 여기에 최근 꽃사슴까지 추가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포획만 일삼는 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개체수, 피해 규모, 생태계 영향 등에 대한 과학적 조사 없이 민원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유해야생동물 지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단순한 포획 중심의 개체수 조절은 장기적으로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대적 소탕이 동물의 번식률을 증가시키는 '보상번식' 현상도 국내외에서 여럿 보고된 바 있습니다. 총기를 이용한 잔인한 포획 장면은 목격한 시민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야기합니다. 

사설 엽사나 민간 포획단체에 대한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남용, 불법 포획 등도 문제입니다.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여 2019년부로 사용이 금지된 올무·덫 등의 도구를 이용한 포획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 등 비표적종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동물뿐만 아닙니다. 202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유해동물 오인 총격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58건 발생했으며, 이중 사망 사고도 15건에 달합니다. 포획 건수당 포상금을 지급하는 현행 제도가 무리한 수렵을 조장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민권익위에서 발간한 '유해야생동물 포획관리의 실효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포획 허위신고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동족방뇨 식 '유해야생동물' 지정 및 포획 제도를 재고해야 할 때입니다. 야생동물 관리에 있어 생태학적 지식 기반의 총체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 노르델타 지역에서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중 인간 활동 감소로 인해 개체수가 1년 만에 약 16% 증가한 카피바라들이 사유지 정원까지 진출해 정원 파괴, 차량 사고 등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노르델타 주민위원회와 주정부, 과학자들은 '공생 계획'을 고안했고, 자연 서식지를 복원하고 덤불 완충 구역을 조성해 카피바라가 머물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카피바라가 주거지에 접근하는 사례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단순 제거를 넘어 비살상적·생태학적 관리 방법으로 세계적 야생동물 정책 방향이 변화 중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Giant Rodents ‘Invaded’ a Wealthy Gated Community. What Happened Next is a Lesson for Cities in the Climate Change Era," TIME

미국 시카고시의 사례도 인상적입니다. 코요테 개체수 증가로 주민과 갈등이 발생하자, 시 당국은 ‘교육 → 공존 → 필요시만 제거’라는 3단계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우선 시민을 대상으로 공존 방안 및 행동 요령을 교육하고, 헤이징(Hazing) 즉 코요테에게 인간 공포심을 다시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소리(휘슬, 냄비, 음악), 물 분사, 조명 등 비폭력적 위협을 사용하고. 고강도 헤이징(페퍼 스프레이, 페인트볼 등)은 전문가만 시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만 최후의 수단으로 포획을 시행합니다. 또 시카고시는 산책로 주변 풀베기, 울타리 설치 등으로 코요테 활동을 억제하고, 생태통로를 설치해 도시 내 야생동물 서식지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야생동물이 '침입자'라는 발상에서 벗어나, 이들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환경학계에서는 도시를 다중종 공동체(multi‑species community)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십여 동물종을 '유해동물'로 낙인찍고 소탕 작전을 벌이는 국가는 21세기 현재 국제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스웨덴, 루마니아의 경우 인명 피해 등을 줄이기 위해 곰, 늑대 등의 포획 허가를 하고 있지만 포획 개체수는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으며,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공격적 개체만을 선별 포획합니다. 

도시 확장과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야생동물이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존재를 ‘제거’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발상은 위험할뿐더러,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더 늦기 전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1️⃣ 과학적 기준에 따른 유해야생동물 종 지정 체계를 마련할 것. 2️⃣ 비살상적·비고통적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 3️⃣ 지역 생태 기반의 통합적 관리 계획을 수립할 것. 4️⃣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주제로 시민 교육을 활성화할 것. 단지 특정 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향해 너무도 쉽게 총구를 겨눌 것이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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