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 만나는 국내 최초의 지식 공동체 ‘동물과미래포럼’(공동대표 최재천, 조희경)이 12월 10일 공식 출범했다. 포럼은 이날 창립식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동물 문제 해결을 위한 ‘2025년 연구지원 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동물복지, 동물권 지식과 담론을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동물과미래포럼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상연재 서울역점에서 창립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날 창립식에는 공동대표를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를 비롯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 등 100여 명의 관계자 및 연구자들이 참석했다.
조희경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사회와 입법 기관을 설득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 토대를 만들기 위해 포럼을 구성했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최재천 공동대표는 기조 강연에서 기초과학도로서 연구비가 부족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후학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꿈이었다”며 이번 포럼 창립에 함께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은 인간이 초래한 생물다양성 불균형과 기후변화의 결과”라며 “동물의 복지가 곧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생태적 전환’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동물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축사에서 “올해 개 식용 종식을 법률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민법의 개정 등 해결할 과제가 많다”라며 현장 연구에 기반한 문제 의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도 “동물과미래포럼이 추구하는 융합적 연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이 사회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상으로 축사를 보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동물과미래포럼은 동물복지 정책과 연구가 만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며 정부도 열린 자세로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조희경 동물과미래포럼 공동대표(동물자유연대 대표)의 기념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축사
동물과미래포럼 출범식 관계자
■ 동물연구지원 사업: 기후재난·전염병·동물정치 등 5개 연구 선정
동물과미래포럼은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동물 분야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2025 동물 연구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11월 총 26건의 연구 계획 중 심사를 거쳐 수의·자연과학 분야 2건, 법·인문·사회과학 분야 3건 등 총 5개 과제를 선정했다.
이날 창립식에서는 선정된 연구팀의 동물 연구자들이 직접 연구 계획을 발표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동물 연구 필요성을 역설했다.
먼저 수의·자연과학 분야에서는 해양보호단체인 플랜오션의 이영란 대표가 ‘한국 해역 해양포유류 좌초 실태 파악 및 질병 연구’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이 대표는 “해양포유류는 해양 생태계 건강성의 지표이자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이라며, 국내 좌초·폐사 개체를 대상으로 세균·바이러스·기생충 및 병리학적 연구를 통해 기후 환경 변화와의 관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민경덕 충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 건강 피해 현황 및 향후 예측’ 연구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축산동물 피해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민 교수는 기상 및 기후, 가축 전염병, 폐사 자료 등 데이터 분석과 농가에 대한 심층 인터뷰 등 질적 분석을 결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축산동물의 폐사 및 전염병 피해 규모를 정량적으로 예측해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기후재난과 도시 생태, 정치 제도를 아우르는 연구들이 선정됐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박현지 연구자는 ‘기후재난 시대 동물원 전시동물 복지 강화’를 주제로, 폭염과 혹한 등 기후위기에 취약한 전시 동물의 기후 적응성을 높이기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국내외 법 제도와 정책 분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도시계획학 박사과정의 권소희 연구자는 ‘경제적 존재에 대한 도시 민족지: 제주도의 제비, 들개, 가로수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통해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경계적 존재들과 인간의 관계 맺기를 탐구하겠다고 밝혔다. 통계 중심의 관리 패러다임을 넘어선 관계 기반의 정책 논의를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오창룡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 동물권 담론의 독립적 가치 확립’ 연구에서 네덜란드 ‘동물당’의 의회 진입 사례를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네덜란드 하원에서 3석을 보유한 동물당은 2006년 창당한 이후 동물권 의제를 정치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동물당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녹색당 등 기존의 환경 정당과 어떻게 협력하는지, 그리고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탐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플랜오션 이영란 대표의 연구계획
■ 장대철 카이스트 교수팀, 국내 최초 ‘지자체 동물복지지수’ 공개
이날 창립식에서는 장대철 교수팀(카이스트 경영대학)이 개발한 ‘전국 지자체 동물복지지수’가 공개되어 이목을 끌었다. 연구팀은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지자체의 조례, 예산, 인력을 분석해 지수화했다. 분석 결과 충청남도가 3개 지표에서 고른 평가를 받아 1위를 기록했지만, 서울시는 조례 점수는 높았으나 인력과 예산 비율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 이는 지자체 동물복지 행정 역량을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장대철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지자체의 동물복지 정책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첫 시도이자 일종의 ‘초안’(Draft) 성격”이라며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평가지표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향후 정책의 실효성까지 평가할 수 있도록 지수 모델을 지속적으로 보완·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동물과미래포럼은 향후 연간 학술 포럼 개최, 연구 소모임 지원, 강연 및 세미나 등을 통해 동물권 및 동물복지 정책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적 담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각 광역지자체의 조례, 인력, 예산 지수 종합한 최종 순위 결과
[2025년 동물과미래포럼 연구지원 사업 선정작]
- 한국 해역 해양포유류 좌초 실태 파악 및 질병 연구 (책임연구자: 이동엽 연구원 / 플랜오션)
-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 건강 피해 현황 및 향후 예측 (책임연구자: 민경덕 교수 / 충북대 수의과대학)
- 기후재난 시대 동물원 전시동물 복지 강화: 국제 동향과 국내 제도 개선 방향 (책임연구자: 박현지 /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수료 연구원)
- 경계적 존재에 대한 도시 민족지: 제주도의 제비, 들개, 가로수를 중심으로 (책임연구자: 박소영 / 서울대 조경학 박사수료 연구원)
- 기후위기 시대 동물권 담론의 독립적 가치 확립과 환경운동과의 관계 설정: 네덜란드 동물당 사례를 중심으로 (책임연구자: 오창룡 교수 /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동물과미래포럼 조직]
| 공동대표: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조희경(동물자유연대 대표)
| 사무국: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국장, 김성남 연구원
| 운영위원: 남종영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 대표, 박태현 강원대 교수(법학), 윤진현 전남대 교수(동물복지학), 이혜원 경복대 교수(동물행동학), 전의령 전북대 교수(인류학), 주지예 성균관대 교수(정책학), 천명선 서울대 교수(수의인문사회학), 황철용 서울대 교수(수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