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게시판
동물자유연대가 꿈꾸는 '동물에게 더 나은 세상'
후원회원님들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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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26
일찍 아침 준비를 하고 수영도 거르고 시계만 본다.
자키아빠와 통화를 해야 하기에.
너무 일러도 그렇고 적당한 시각을 기다리다가
아침 7시 40분쯤 집으로 전활했다.
한참을 신호가 가도 받질 않는다.
계속 기다린다.
초조하고 급했지만 참고 기다린다.
드디어 잠이 덜깬 목소리.
마음같아서는 원망섞인 고함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최대한 자제하고 자제한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떤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기에.
들어 보니 그 후배한테서
사흘 전에 줄이 풀렸다는 소릴 들었단다.
그래서 바로 찾아서 묶으라고 야단을 쳤단다.
그리고는 오늘 이 상태란다.
바로 우리한테 연락이라도 줬으면
철사나 우리나 이런 고생 안했을 텐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침을 꼴깍 삼키고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하다
오늘이라도 같이 찾게 협조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점심때쯤 자키와 같이 수색하겠노라고
그 때쯤 마을에서 만나자는데
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
일터의 일도 바쁘지만 그건 뒷전이고
권선생님께 아침부터 같이 다시 찾자고 전활 했는데
너무나 미안하다.
선생님 아침 드실 거 제가 사 갑니더 며칠 최선을 다해 보입시더
뻔뻔스럽게도 건강치 못한 분을 이렇게 계속 혹사를 시킨다.
내 차에 철사와 같이 친구로 있던 권선생님네 발바리 셋을 싣고
(혹시 철사가 우린 무서워도 친구들이 오면 숨었다가도 나올까봐)
지원씨와 권선생님 , 나 , 곰순이, 뿌꾸, 강이 이렇게 여섯이
철사를 만나기 위해 달린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려 걱정이다.
이 비에 수색도 힘든데
비에 젖을 철사를 생각하니 더 한숨이 나온다.
마을에 접어들어 마을분들께 물어보니
오늘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비가 와서 그런가.
어젯 저녁 다섯시경에
마을길에서 보았다는 할머니를 만났다.
요놈이 우리가 일차 철수한 후에 산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분명히 그 마을을 맴돌고 있겠기에 안심은 된다.
노인회관에 맛동산 다섯봉지를 사들고 가서
다시한번 특징을 설명하고
찾아주면 꼭 사례를 하겠다고 부탁,부탁하고는
곰순이와 뿌꾸를 앞세우고 마을길을 더듬고 또 더듬는다.
곰순이와 뿌꾸는 산책이 마냥 즐거운지
온몸에 흙탕칠 범벅이고 비에 젖어도
마을집 하나하나를 다 들어가서 구경한다.
권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내내 이름을 부르고
우린 조용히 뒤따르며
하룻동안 묶여 있었다던 폐가를 중심으로
몇 번을 훑고 산길이며 들길을 헤맨다.
어젯밤 구웠던 고기와 김밥을 두고간 폐가엔
길냥이만 오두마니 앉았다가 우릴보고 달아난다.
철사가 먹었는지 고양이들이 먹었는지 아님 쥐들이 먹었는지
고기는 안보이고 김밥도 제법 많이 줄었다.
몇 시간을 훑어도 흔적이 없다.
사례금을 십만원으로 정해서 마을분들께 알리고
며칠이 걸려도 꼭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점심때가 다가와 자키아빠를 만날 시간이 되어간다.
권선생님이 너무 지쳐
오후엔 자키아빠한테 맡기고 철수하려는데
지원씨는 불만이다. 하루종일 더 찾잔다.
내 맘도 그러고 싶지만
연세 많은 권선생님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터덜터덜 실망한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자키를 앞세우고 자키아빠가 마을길로 접어든다.
유인용 참치캔을 하나 주며
다른 어떤 말도 다 생략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달라
마을분들께도 협조를 구해달라
며칠이 고비다 제발 부탁한다고만 했다.
많이 미안해 한다.
그런 건 다 괜찮다. 찾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차 있는 데로 내려와서
권선생님은 비에 흙에 엉망이 된 곰순이, 뿌꾸를
개울에서 대충 씻기겠다고 개울로 내려가는데
나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폐가로 가 보고 출발하자는 생각에
혼자 참치캔을 들고 마을길로 접어든다.
마을 윗쪽으로 가던 자키아빠가 바로 내 앞에 있다.
자기도 폐가로 가는 모양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앞에서, 뒤에서 걷다가
폐가로 들어서서 앞을 보니
아~아~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바로 그토록 찾고 헤매었던 그 철사가
허물어진 헛간 구석에서
얼굴만 조금 내밀고 겁에 질린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다.
자키와 자키아빠 , 그리고 날 보더니
도망갈 용기가 없었는지
아니면 허기에 추위에 지쳤는지
경계를 하면서도 풀이 죽어 보인다.
자키아빠도 마당에 나뒹굴던 종이박스를 발로 나한테 밀어주며
대문쪽을 막도록 하고 자키의 목줄도 수돗가에 대충 건다.
너무나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솟았지만
이번만은 침착해서 절대로 놓치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참치캔을 급히 따서 주며
작은 목소리로
김선생님~ 이거로 유인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자꾸 부르며 다가가이소~
냄새를 맡을 때 어깨줄을 잡아서 바로 안으믄 됩니더~
철사야~ 철사야~ 잘 왔다~하며
둘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며
참치캔을 입 부근에 점점 가까이 들이밀며
자키아빠가 최대한 다가가서 바로 낚아챈다.
그제서야
난 목놓아 엉엉 운다.
떨리는 손으로 권선생님께 폰을 누르니 안받는다.
아참, 지금 아그들 씻기고 계시지.
지원씨한테 연락해서 찾았다고 고함을 지른다.
잠시후 두 사람이 울면서 달려오고
우리 세 여자는 철사를 번갈아 안고
엉엉 엉엉 울고 또 운다.
며칠 못먹어서 앙상하고 옷도 다 젖고 가시에 엉망이고
목줄도 어디서 끊겼는지 어깨줄만 있다.
역시 권선생님한테 안겨들더니 내내 반가움에 버둥댄다.
수돗물을 틀어 물수건으로 대충 닦는다.
도깨비 바늘이 온몸에 많이도 매달렸다.
얼굴을 닦이면서 보니 철사의 양눈 아래가 흠뻑 젖는다.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강아지의 눈물을.
그 눈물을 모두 보며 더욱 목이 메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의 이 마음을 알고
이렇게 재회를 허락해 주신 신들께 감사하다.
권선생님은 절대 다른 데 보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고 흐느끼고 또 흐느낀다.
우리는 개선 장군이다.
자키아빠한테의 섭섭함, 원망도 날린다.
사례금 십만원도 굳었다. ㅋ~
돌아오는 내내 너무 기뻐서 울고 또 운다.
권선생님댁에 와서 철사옷을 갈아입히고
중국집에 전활 한 통 때렸다.
탕수육 큰 거 하나 하고 짬뽕 둘, 짜장 하나 빨리 갖고 오이소~
수고한 아그들과 다시 만난 우리 소중한 인연 철사한테도
푸짐한 빵세례를 퍼부었다.
낮술이지만 자축으로 매실주도 몇 잔하고
울고 웃으며 여자 셋이 그렇게 감격을 나누었다.
철사는
내 생애 중 가장 멋진 성탄 선물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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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2004.12.29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류소영 2004.12.27
새벽아.....
이기순 2004.12.27
에구..... 참.............. ㅠ.ㅠ
이경숙 2004.12.27
예...그 이지원씨 맞습니다...그 발바리 아가 여섯과 어미는 부산 근교 권선생님 지인의 농장 한켠에 집을 지어서 잘 돌보고 있습니다...지원씨가 자주 가서 돌보고요...이 일을 겪으면서...정말 예감을 무시못한다는 것과 유기견을 거리에서 잡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고 사람인 우리의 생각보다는 멍멍이들의 입장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등 많은 걸 느꼈습니다...푸름이 , 새벽이도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관리자 2004.12.27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본듯해요...ㅠ.ㅠ 이사님 정말 수고많으셨어요..ㅠ.ㅠ 근데 혹시 솔로 지원씨라 하면 일전에 아파트에서 발바리 여섯 아가들을 데리고 계신 그분 아니신가요?
이옥경 2004.12.27
하이고...이사님...엉엉..ㅠ.ㅠ 제목보고 뭔가했다가..읽는내내 가슴졸였습니다..그만한 정성이 없이 그 사방뚤어진 곳에서..철사를 어떻게 찾으셨겠습니까...애들없어졌다하면...정신이 다 혼미하셨을텐데요..지난여름 잃어버린 푸름이랑..새벽이 생각이 울컥납니다.. 철사이눔이 권선생님곁을 떠나기 싫어서 그랬나봐요..정말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ㅠ.ㅠ
김남형 2004.12.27
ㅜㅠ, *^^*, ㅜㅠ, *^^*
박성희 2004.12.26
부산에서 그런일도 있었군요.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아니 날 수가 없네요. 철사를 본 적은 없지만 제발 이제 다시 집 나가지 말고 행복하기를......
오명희 2004.12.26
다행이네요. 위의 글 읽고 혹시 못 찾은 이야기였으면 어쩌나 맘 졸였는데... 철사.. 제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이경미 2004.12.26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