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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가 꿈꾸는 '동물에게 더 나은 세상'
후원회원님들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re] 원본

1. 개는 소, 돼지와 달리 활동성이 매우 강하니까,
좁은 공간에 가둬키우면 그 고통이 훨씬 큽니다.

활동성이 강한 개는 다른 가축과 달리 한 마리당 10평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데,
사방 1미터의 쇠우리 속의 고통 가운데 기르면서
건강한 개로 사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개의 병을 막기 위해서 페니실린제의 일종을 거의 수시로 먹이고 있습니다.
개들은 어떤 가축보다도 고통과 스트레스 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지능이 높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스트레스를 받고 죽은 고기가 과연 먹는 사람 몸에는 좋을까요.
개고기 육질이 부드럽다는 것은 극도의 고통과 스트레스 하에 도살되었음을 의미하는데,
그런 고기를 PSE고기라고 합니다.
PSE고기를 먹게 되면 각종 자극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고,
자기가 병에 걸린 지도 모르게 되며 쉽게 흥분하는 체질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사회가 따뜻해지려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아지는게 좋을까요,
버려진 개를 구조해 치료하여 데리고 살고 입양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게 좋을까요.
유기견을 구조하는 이들은 개체수가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불임수술을 하여 입양시킵니다.

얼마전 남편 친구는 자신이 모란시장에서 목격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철장에 갇혀있던 개들이 주인만 나오면 모두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데,
다리만 떠는게 아니라, 눈 위(사람으로는 눈썹자리)까지 마구 떤다는 것입니다.

 

2. 소,돼지,닭도 평생 한걸음 걸어볼 수 없게 가둬키우는 사육방식을 바꿔나갈 것을 주장하지만,
우선 합법화되지 않은 개고기마저 합법화되어 대량사육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님이 심리적 거부감으로 육식을 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사실 인간이 주는 동물에 대한 가공할 고통에 대해
심리적으로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식 먹이사슬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해도,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평생 한걸음 걸어볼 수도 없게 사육하다가 잔인하게 도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부시맨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취화살부터 쏘고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인류의 선조가 생존을 위해 짐승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을 찾기 힘든 \'마지막 빙하기\'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렇더라고 조상들은 야생에서 사는 동물을 꼭 필요한 만큼만 잡아서 먹었습니다.
점차 동물을 잡아서 번식시키고, 나아가 좁은 칸막이에 넣어
생산성을 높인 것도 어쩌면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굳이 인간의 몸구조와 맞지않아 건강에 좋지 않고
환경파괴와 오염의 주범이 되는 육식을 위해 대량축산을 장려하고
고통을 주는 사육방식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을
더 이상 ‘자연의 섭리’라며 고집하거나 용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존한다면,
바람직한 相生의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며 꼭 그래야 합니다.
소고기의 경우 1인분 생산하는데, 곡식이 22인분 소모된다고 합니다.
육축의 곡물사료 생산을 위해 제3세계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먹을 것을 빼앗는 셈이 되고 있습니다.
가축사료 생산을 위해 제3세계 토지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고,
열대우림을 불태워 개간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보아 육류의 생산과 소비는 점차 줄여나가야 합니다.
스웨덴의 경우는, 88년에 가축에게도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고통을 덜 주는 방식으로 도살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러할진대, 타조, 오소리, 물개 등 식용의 종류를 자꾸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하물며 영특한 지능을 가지고 인간의 벗이 되어 살아가는 개들을
대량사육하여 산업화한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일지라도, 지능지수 70-80의 원숭이들을 잡아먹는데
심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에는 못미쳐도 사람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는 영리한 개들을 잡아먹는 것도
개에 대해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의 영혼의 유무를 떠나, 사람의 영혼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어떤 만화영화에서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섬세하게 느끼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꾸준히 갈고 닦았으면 합니다.

 

3. 야채, 화초, 나무, 벌레, 새, 개를 함께 키워 보시면, 감정이 다를 겁니다.

저는 야채, 화초, 나무, 개를 함께 키우고 있고, 어릴 때 새를 키워본 경험도 있습니다.
물론 잎파리를 뜯기는 야채도 불쌍하고, 화초와 정을 주고받기도 하며,
조그만 성미산의 벌목된 나무들을 보며 울기도 많이 하고
동네 사람들과 새벽이고 밤이고 오르내리며
거의 산의 파괴를 막아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날개 달린 조그만 새가 새장에 갖혀 있으면 문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아, 지금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맘 먹고 진짜 그리해야 겠다고요.
새장 보는대로 몰래 문을 열어주어야 겠어요.
지금까지는 야생성을 잃은 새가 도망가도 제대로 못살거라고 내비뒀지만,
이제는 그런 범죄로라도 그 부당성을 세상에 알려야겠네요
아니, 새를 새장문 열어놓고 키우는 방법도 있다는데 그걸 실험해보고 보급할까요?)

그러나 가장 정이 가고 애처럽기도 한 것은 바로 개입니다.
우리집에 소와 개를 같이 키워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게 이성이 아니고 감정일 뿐일까요?
그렇다면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걸까요?
왜 개가 더 안타까울까요?
실제로 그 모든 생물의 고통의 정도가 다 같을까요?

식용으로 키워진 개도 데려와서 조금만 인정을 베풀어 보세요.
금새 몸을 밀착하며 다가와 사랑을 갈구할 겁니다.
그러다가 좋아서 펄쩍펄쩍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겁니다.
눈을 맞추고 뭔가 말을 할 것입니다.
개처럼 눈을 맞추고 온갖 표정으로 말하는 동물이 또 있을까요.

사스와 에이즈는 탐식하는 인간에게 내린 신의 재앙입니다.
사스는 온갖 종류의 동물을 잡아먹는 중국 광동지방에서 발생했고,
에이즈는 원숭이를 잡아먹는 아프리카 족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을 기자님은 알고 계시겠지요.
원숭이가 갖고 있는 병균이 인간의 체내에서 변종을 일으킨 것이라는 것도요.

 

4. 기호와 감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개고기 먹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 식습관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곰을 가두고 내내 쓸개를 뽑아먹는 것에 반대하듯이요.
그들이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게 더 중요하겠지요.
대만과 태국도 개고기를 먹는 관습이 있었지만 금지되었습니다.
거기에 대만은 개들의 신분을 등록하고 칩을 넣어주도록 하여
더욱 동물보호의 바탕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실질적으로 생명존중에 대한 의식과 실천을 만들어가는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네, 자기가 싫다고 남까지 하지말라는 차원이 아니예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고 학원을 전전하게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건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이고 우리 애들이 그렇게 자라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제가 당근이 싫다고 너도 먹지말라고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단순히 기호의 문제로 축소하지 마세요.

정말 우리 사회는
\'학원\'과 \'컴퓨터게임\'과 \'폭력\'과 \'생명경시풍조\'로 인해
앞날이 암담합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학원 다니느라,
아이들끼리 자연스레 어울려 놀아보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컴퓨터게임과 폭력은 나름의 필수불가결의 문화코드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것으로 놀 줄을 모릅니다.
이제 학원폭력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 뿐 아니라,
잘 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일반화된 문화라고 합니다.
거기에 소위 애완동물을 예쁘다고 너도나도 사서 키우다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농촌 어딜 가도 한맺힌 울음을 우는 개사육장이 난무하여,
도무지 남의 고통에 무심하도록 길러진 이 나라 아이들의 미래는,
얼마나 따·뜻·하·고   창·의·가  넘칠까요?

어릴 때 동물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사람들이
커서도 자신과 남들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또한, 범죄자 중엔, 어릴 때 동물을 학대하며 자란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저는,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개를 장난감이나 마스코트가 아닌, 친구이자 가족으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가
커서 절대로 남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학과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이제 고학년이 되어 게임도 좋아하지만,
택견, 축구, 자전거여행, 캠프, 산행 등을 엄청 즐깁니다.
그렇다고 물론 우리 아이가 당연히 훌륭히 자랄 거라 확신은 못하지만,
그보다 안타깝고 두려운 것은 우리 아이가 함께 살아갈 세상 아이들입니다.
우리 아이가 미래세계에 있든없든 우리의 미래가, 후손들의 미래가 각박하지 않았으면 하고,
지구도, 거기에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도, 일회용 소모품처럼 갉아먹혀지지만 말고
지금보다 영적으로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였으면 합니다.


5. \'개고기 식습이 인간신뢰의 상실을 가져온다\'는 법정스님의 말씀

\"개고기 식습의 근거는, 개의 교미시간이 길면
한시간 이상으로 소나 말에 비하여 몇 곱절이다.
그 점은 뱀이 더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개와 뱀을 정력제로 생각하고 먹는 것이 그 저간의 진정한 이유이다.
.......... 중략

우리 사회가 고래로 정치, 경제, 종교 등의 각계각층에서 사분오열되는 내분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정을 들여 키운 개를 하루 아침에 도살하여 잡아먹는 데서
오는 인간신뢰에 대한 상실로 인한 배반의 악습이, 인간 상호간에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파생된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또 개를 집단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여 공중적 폐단이 매우 심각하다.
소음을 줄인다고 강제로 개의 고막을 파열시키는 잔인함까지 저지르니
개고기를 먹기 위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

 

6. \'다른 육고기 생산보다 자연을 더 많이 파괴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말 개고기가 합법화되고 산업화되어 엄청나게 양산되게 된다면,
나아가 수출이라도 하게 되면, 님도 말씀하셨듯이
소를 키우는 것보다 환경피해가 더 크게 됩니다.
생태계에서 초식에서 육식으로 갈수록 키우는데 소비되는 칼로리가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지금 햄버거 소비량 때문에 소가 먹어치우는 곡물소비량이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고
바로 미국인들의 햄버거 소비가 남아메리카 열대우림 파괴와 메탄가스 발생의 주범
중 하나라는 것은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육류소비를 점차 줄여야 하는 상황에,
소는 그나마 풀을 먹지만, 잡식인 개의 사료는 소, 돼지, 닭 등이 주원료가 되고 있으니
식도락을 위해 개라는 종을 하나 더 식용의 반열에 포함시켜
육류소비를 조장하고 환경피해를 늘리는 것은 결코 진보성을 획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뭐 그렇다고 세상 모든 육식동물을 다 없애야 한다는건 당연히 아니고요,
개가 너무 넘쳐나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12만마리가 버려진다니,
자꾸 번식시키지 말고 있는 놈들이나 고통에 빠뜨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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