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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史..그 죄를 아는가..
- 이경미
- |
- 2003.09.06
* 도서명 : 동물원의 탄생
* 저자명 : 니겔 로스펠스 지음/이한중 옮김
* 출판사 : 지호/1만 5천원
미국 역사학자 니겔 로스펠스가 쓴 『동물원의 탄생』은 원제 ‘야만과 짐승(Savages and Beast)’에서 책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교육·오락·과학이란 합리적 명분 아래 야생 동물을 좁은 울타리에 가두고 구경해온 인간의 야만스런 행위를 역사적으로 훑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동물원 하면 흔히 연상되는 신기함과 포근함이 없다. 심은하·이성재 주연의 멜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 견주자면 ‘동물원 옆 도살장’쯤 될 것 같다. ‘동물원 옆 잔혹극’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사파리 동물원에서 활달하게 놀고 있는 호랑이들. 과연 그들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책에는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동물의 물리적.정신적 자유를 구속해온 지난 수세기가 또렷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고 저자는 인간, 특히 동물원을 건설한 사람이나 동물을 포획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무조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그의 관심은 동물을 대해온 우리의 인간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는 데 있다. 그 중심에 동물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술술 읽힌다. 문명화된 유인원의 목소리를 담은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우리에겐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익숙하다) 를 서술의 축으로 삼고, 그 주변에 동물원과 관련된 각종 문서.그림을 곁들이며 야만의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동물원은 구속의 장소다. 쇠창살 안에 갇혀 슬픈 눈빛을 보내는 동물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감상적 태도를 거부하고 사태의 안팎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동물이 인류 문명 한복판에 들어와 구경거리.장사거리.연구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1907년 독일 함부르크 인근 슈텔링겐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동물원을 세운 카를 하겐베크(1844~1913)다. 그는 당시 혁명으로까지 평가받은 창살과 우리가 없는 동물원을 세워 일반인은 물론 숱한 학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불쌍하게 갇혀만 있던 동물들에게 자연과 흡사한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서울대공원이나 용인 에버랜드에서 보는 것 같은 개방형 야외 동물원이 처음 도입된 것이다. 저자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겐베크의 신화화.영웅화에는 단연 반대한다. 지구촌 동물 거래를 한손에 쥐고 있었던 그의 상업적 계산, 사업가적 속셈을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 평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바로 이같은 하겐베크의 감춰진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다. 서구의 동물원에 진귀한 생물체를 공급하려고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일대를 뒤지는 포획꾼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인 동물거래상의 탐욕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일례로 당시 사냥꾼들은 기르기 쉽고 운송하기 편한 어린 사자.호랑이.코끼리를 잡으려고 그들의 어미.아비를 무참하게 살육했다. 어린 인도 코뿔소를 잡는 과정에서 어른 코뿔소 마흔마리를 죽인 경우도 있다. 더 경악스러운 점은 동물원에 지구촌 오지의 사람들을 데려가 보여주는 \'인간 쇼\'가 성행했다는 사실이다. 동물 전시의 \'약발\'이 떨어지자 하겐베크는 1870대 중반부터 \'새로운 수입원\'으로 원주민 순회 전시를 기획했다. 에스키모인.실론인.아프리카인 등. 나아가 \'나체 쇼\'도 기획했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해 대성공을 거뒀다. 1887년 남아메리카 푸에고 군도의 사람을 데려온 베를린 전시에는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추첨이 불가피했고, 질서를 잡기 위해 안전요원이 투입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학계에선 인류학.생물학.민족학 연구의 \'재료\'를 제공했다고 대환영했으니…. \'동물원의 탄생\'은 단순한 고발서가 아니다. 앞에 언급된 동물 학대사의 뿌리를 캐들어간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성장사, 제국주의의 팽창사와 일치한다. 두둑해진 주머니를 더 채우려고 세계를 점령해갔던 서구 자본주의의 그늘을 폭로한다. 또 인간의 우월성을 앞세워 동물을 내려다보고, 나아가 오지 정착민을 미개인으로 치부했던 서양 사회를 문명비평적 시점에서 되돌아본다. 한가지 남은 의문. 그렇다면 동물원의 미래는? 동물원은 폐기 처분의 대상일까.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마리는 이미 제시됐다.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보지 않는 의식의 전환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철창, 즉 물질에 경도된 현대 문명의 그릇된 시스템을 자각하고 인간과 동.식물의 수평적 관계를 깨닫는 데 열쇠가 있다. 다음 주 추석 연휴, 테마 파크나 수족관에 갈 사람들은 그곳에 전시된 생물들을 분명 예전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것 같다. 출처 : 중앙일보
▶사파리 동물원에서 활달하게 놀고 있는 호랑이들. 과연 그들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책에는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동물의 물리적.정신적 자유를 구속해온 지난 수세기가 또렷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고 저자는 인간, 특히 동물원을 건설한 사람이나 동물을 포획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무조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그의 관심은 동물을 대해온 우리의 인간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는 데 있다. 그 중심에 동물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술술 읽힌다. 문명화된 유인원의 목소리를 담은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우리에겐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익숙하다) 를 서술의 축으로 삼고, 그 주변에 동물원과 관련된 각종 문서.그림을 곁들이며 야만의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동물원은 구속의 장소다. 쇠창살 안에 갇혀 슬픈 눈빛을 보내는 동물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감상적 태도를 거부하고 사태의 안팎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동물이 인류 문명 한복판에 들어와 구경거리.장사거리.연구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1907년 독일 함부르크 인근 슈텔링겐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동물원을 세운 카를 하겐베크(1844~1913)다. 그는 당시 혁명으로까지 평가받은 창살과 우리가 없는 동물원을 세워 일반인은 물론 숱한 학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불쌍하게 갇혀만 있던 동물들에게 자연과 흡사한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서울대공원이나 용인 에버랜드에서 보는 것 같은 개방형 야외 동물원이 처음 도입된 것이다. 저자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겐베크의 신화화.영웅화에는 단연 반대한다. 지구촌 동물 거래를 한손에 쥐고 있었던 그의 상업적 계산, 사업가적 속셈을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 평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바로 이같은 하겐베크의 감춰진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다. 서구의 동물원에 진귀한 생물체를 공급하려고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일대를 뒤지는 포획꾼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인 동물거래상의 탐욕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일례로 당시 사냥꾼들은 기르기 쉽고 운송하기 편한 어린 사자.호랑이.코끼리를 잡으려고 그들의 어미.아비를 무참하게 살육했다. 어린 인도 코뿔소를 잡는 과정에서 어른 코뿔소 마흔마리를 죽인 경우도 있다. 더 경악스러운 점은 동물원에 지구촌 오지의 사람들을 데려가 보여주는 \'인간 쇼\'가 성행했다는 사실이다. 동물 전시의 \'약발\'이 떨어지자 하겐베크는 1870대 중반부터 \'새로운 수입원\'으로 원주민 순회 전시를 기획했다. 에스키모인.실론인.아프리카인 등. 나아가 \'나체 쇼\'도 기획했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해 대성공을 거뒀다. 1887년 남아메리카 푸에고 군도의 사람을 데려온 베를린 전시에는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추첨이 불가피했고, 질서를 잡기 위해 안전요원이 투입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학계에선 인류학.생물학.민족학 연구의 \'재료\'를 제공했다고 대환영했으니…. \'동물원의 탄생\'은 단순한 고발서가 아니다. 앞에 언급된 동물 학대사의 뿌리를 캐들어간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성장사, 제국주의의 팽창사와 일치한다. 두둑해진 주머니를 더 채우려고 세계를 점령해갔던 서구 자본주의의 그늘을 폭로한다. 또 인간의 우월성을 앞세워 동물을 내려다보고, 나아가 오지 정착민을 미개인으로 치부했던 서양 사회를 문명비평적 시점에서 되돌아본다. 한가지 남은 의문. 그렇다면 동물원의 미래는? 동물원은 폐기 처분의 대상일까.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마리는 이미 제시됐다.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보지 않는 의식의 전환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철창, 즉 물질에 경도된 현대 문명의 그릇된 시스템을 자각하고 인간과 동.식물의 수평적 관계를 깨닫는 데 열쇠가 있다. 다음 주 추석 연휴, 테마 파크나 수족관에 갈 사람들은 그곳에 전시된 생물들을 분명 예전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것 같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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