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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식용에 대한 생각 II

 

개고기식용은 \'필요\'에 의하여 존재했던 식습관 행위입니다.

오늘 날, 개고기식용행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부 층에서는

개고기식용행위를 문화니 전통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이는 특정개인을 위한, 개인의 선택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즉, 개고기는 우리의 식문화니, 전통이니, 보신이니, 정력에 좋으니,

피부미용에 좋으니, 맛이 있느니, 개인의 선택의 자유라느니,

식용견이 따로 있느니, 개고기식용반대는 사대주의이니,

개를 돕는 대신에 불우한 이웃이나 도우라느니 하는 것은

결국 개고기식용이라는 과거 일부 층의 식습관을 이어가고자 하는

개인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개고기업자들이 돈을 벌기위한 영리목적이던,

개고기식용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기호와 식습관에 대한

집착에 의한 것이던, 선진외국에 대한 반감과 열등감을 지닌 개인들의

반발심에 의한 것이던, 그 어떠한 이유로 개고기식용을 옹호하던지 간에

이는 특정개인을 위한,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옹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고기식용의 경우에는 이미 식용을 위해 사육되는 다른 농장동물과는

달리 그 식용행위가 계속 존속되어야 할 필요성이나 그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개’라는 동물의 특성에 따르는 것입니다.


‘개’라는 동물은 ‘인간’이라는 동물과 15,000여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인류와 공생관계를 이루며 함께 고등동물로 진화되어 왔습니다.

더불어 ‘개’라는 동물이 인간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수없이 많은 전례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개’라는 동물이 단지 방범, 사냥, 안내, 구조 등의 역할을 넘어서서

가족 또는 친구의 개념으로 인간의 동반자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지구상의 어느 특정지역의 특정계층의 특정 개인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베스트 프렌드’라는 진부하기조차 한 말이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 라는 동물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간의 반려동물로

선택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견해가 어느 특정 개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오늘 날 인간사회에서의 반려동물로서의 개의 지위와 역할은

왜 개가 다른 동물과 다른가 하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를 거부, 또는 부인하며 개나 다른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은 개고기식용의 식습관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신의 개인적인 동기와 목적에 의하여

‘개’ 라는 동물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일부 한국인의 개고기식용습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고기식용 근절에 대한 요청을 민족적 자존심에 연결시켜서

심지어 개고기를 직접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식의 여론으로 몰고 간 것은,

특정 유명 외국인의 인터뷰를 민족의 감정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보도한 방송사와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개라는 동물이 인간에게 고기와 가죽과 단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동물이었다면

오늘 날 개고기식용에 대한 찬반논쟁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미 오래 전에 개 역시 소나 돼지와 같이

가축으로서 농장동물로 사육되어 왔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대다수의 국가에 의해 개고기식용이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은 개라는 동물이 단순히

고기와 가죽과 노동력만을 얻기 위한 가축이 아니라는 것을

즉, 개는 다른 동물과 동일시 할 수 없는 인간의 동물가족이므로

개라는 동물은 일부 인간의 ‘식용행위’로부터 보호하자고 하는

제도적인 약속이며 이러한 약속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왜 ‘개’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다른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개고기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반대의 이유가

대개 주관적인 체험에 의한 정서적인 이유와 자신의 가치관에

의한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한솥밥을 먹고 살던 개를 잡아먹는 것은 그것이 비록 생존을 위해

부득이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그 행위를 즐길 수

없는 일로서 한솥밥을 먹고 살던 개의 끔직한 도살을 보고 들었을 때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억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자신의 개가 아니더라도

식용으로 사육되고 도살되는 개들에 대해 보고 들을 때

기억의 연상 작용에 의하여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지성과 감성을 지닌 또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채식문화가 장려되고 정착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거슬러

우리사회에서 굳이 더 필요로 하지도 않은 고기를 얻기 위해

식용의 목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개들의 고통을 보고, 들을 때

실제로 그로 인한 고통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이러한 고통은 다른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이 당하는 고통을

듣고 보았을 때에도 느끼는 고통입니다. 단지 후자의 경우,

제도적으로 이미 인류의 존속을 위한 식용과 실험의 대상으로 인정되어

사육되고 있기에 그 해결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지성과 감성을 지닌 또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 이를 제거하고자 하게 됩니다.

이것이 개고기식용을 반대하는 경우에 개인의 가치관이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에 의한 반대의 주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그러한 정서를 갖고 있지 않거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설득의 효과가 없습니다.

개고기식용찬반 논쟁의 경우, 쌍방이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이유는

대체로 그 이유가 개인적인 것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개고기식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다분히 과거 지향적입니다.

자신들의 주장에 대하여 또는 자신들이 반박하고 싶은 의견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개 감정적으로 격한 어투로 일축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조소하거나

딴지를 걸거나, 상스러운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고기식용행위를 찬성하는 것이 소위 ‘배부른 사람들’에 대한

보복행위라도 되는 듯이 이상한 궤변을 늘어 놉니다.

동물이 받는 고통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고 이러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이제 그 시작으로서 우리나라의 과거에 일부 층에 의해 시행되었던

개고기식용식습관을 바꾸어 보자고 하는 개고기식용반대자와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개고기식용행위는 이에 대한 각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사회, 국가, 인류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고기식용산업에 관련된 일부 특정개인이나 업체의 영리나,

또는 개인의 기호나 식습관, 이해관계에 따르는 개고기식용이라는 행위를

사회와 국가가 묵인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가

공동체의 입장에서 대다수의 구성원에게 정서적으로, 윤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 경우, 이러한 행위는 용납되지 않아야 합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늘어나는 인구에 대한 식량의 공급원으로서

개를 가축으로 사육하여야 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존재함에 있어서, 단순히 육체적인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인 식량의 공급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생각입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식량을 찾아 헤매는 원시적인 존재로부터

단순히 육체적인 생존과 종족 번식만이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정신적영역의 활동을 추구하며, 영적인 영역의 존재를 탐구하는

지능과 감성을 지닌 고등동물로 진화되었습니다. ‘개’ 라는 동물도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오면서 인간과의 감성적인 교류가 가능한 고등동물로

진화되어 왔습니다. 이에 개는 인간과 정서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동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된 인간에게는 먹는 것에 대한 일차원적인

욕구나 필요조건 이외에 정신적인, 윤리적인 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또 이러한 정신적, 윤리적인 가치는 인간을

다른 동물로부터 구분 지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개’ 라는 동물의 특성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나 고려가 없이

단순히 개의 번식에 있어서의 생물학적 특성만을 논하며,

왜 ‘개’라는 동물이 인간의 반려동물로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왜 ‘개’라는 동물이 왜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개’와 ‘인류’ 의 공생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개’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이고 편협한 생각과 경험에

따라 개를 고기 덩어리로만 보고 개를 증가하는 인류의 식량원으로

대량 사육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지성과 감성 또는 합리적인 이성을

지닌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감성과 윤리를 배제하고 단순한 물리적인 실용성만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개를 식량의 공급원으로 하자는 의견은 결코 실용적이지 못한 방법입니다.

개를 가축화하여 사육함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지구상의 환경자원이

또 다시 훼손되어야 하며,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억제가 없이 식량원만을

늘인다는 것은 이 또한 그게 수십 년이 되던 수백 후가 되던 언젠가는

그 어떠한 물리적 자원도 고갈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므로

이는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를 식용가축화하자는 의견은 인간이 존재함에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배를 불리는 것만이 아닌 감성적, 정신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며

‘개’라는 동물이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식용으로 사육되는 가축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와 배경을 무시한, 그리고 육식에서 채식으로 전환해 가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에도 역행하는, 지구상의 환경 보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매우 근시안적이고 지엽적이며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발상입니다.

인류의 생존에 대한 해결책은, 인구증가의 억제와 생존을 위한

대체 에너지, 대체 식량의 연구개발과 그 발명에 있습니다.

육류생산의 증가는 해결방안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가는 퇴보의 길입니다.

 

--이하 생략--




댓글

김진희 2003.12.22

잘 봤습니다


신행호 2003.12.22

좋은글..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안혜성 2003.12.21

님 글을 읽고나니 저 또한 개고기반대를 하면서도 논리적이지 못했던것 같아요.아마도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서 그랬던것 같았는데 읽고나니 정리가 좀 되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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