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말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통해 들여다 본 국내 말 산업의 실태

농장동물

말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통해 들여다 본 국내 말 산업의 실태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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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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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촬영 중 무리한 연출로 인한 퇴역 경주마 사망 사건이 발생한지 반년 남짓 지났습니다. 이 사건은 거센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그제서야 농림축산식품부는 미디어 출연 동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그러나 그 죽음 뒤에는 동물의 방송 출연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더 짙은 어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망한 말 마리아주는 경주마로 뛰다 은퇴한 퇴역마였습니다. 퇴역 후 여기저기 팔려다니던 마리아주는 말 대여 업체에 도착했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잘 아는 비극적인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 행적 파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사고 발생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마리아주에게만 일어난 불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국내에 있는 말들 거의 대부분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동물자유연대가 마주한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인간 위해 살았건만, 그 끝은 방치와 굶주림, 비참한 죽음 뿐

 

최근 동물자유연대가 충남 부여에서 구조한 방치 학대 말들은 국내 말 산업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철거가 중단된 폐축사 터에 성치 않은 말 네 마리가 버려졌습니다. 그 중 극심하게 쇠약했던 말 두 마리는 폭염과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구조 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살아남은 나머지 두 마리를 구조해 제주에 있는 말 보호 시설로 이송시켰고, 그들은 현재 건강 회복에 집중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치 학대 말 구조기 보러가기 > https://www.animals.or.kr/campaign/farm/61244

 

대체 무슨 이유로 네 마리나 되는 말들이 이런 곳까지 들어오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조를 진행할수록 그 이면에 국내 말 산업의 근본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번을 통해 확인한 결과 구조한 두 마리 중 갈색털을 가진 수컷 말 별밤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경주마로 활동한 뒤 은퇴한 퇴역경주마였습니다. 말들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말 산업 정보 포털(horsepia.com)에서 별밤은 퇴역 후 여러 승마장에 팔려다니다 현재는 전남 구례에 있는 승마장에 소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포털 상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는 충남 부여 풀숲에 방치된채 발견되었습니다.

 

엉덩이 부분에 큰 상처를 입은 암컷 말 도담은 포털상 기록과 실제 간의 오류가 더 심합니다. 이 말은 2012년 경기도에 있는 모 학교에 매입된 후 20211230일자로 폐사 신고가 되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말이 포털에서는 죽은 말로 기록된 것입니다. 처음 폐축사에 버려질 때부터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는 제보로 미루어 볼 때 학교에서 승마 체험 등의 용도로 이용하다 더는 사람을 태우기 어려워지자 말을 처분한 뒤 포털에는 폐사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간의 유희를 위해 몸에 무리가 가도록 경기장을 질주하고, 하루종일 등에 사람을 태운 채 작은 승마장을 빙글빙글 도는 말들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나이가 들거나 건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더 그러합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말들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살았건만 말 산업 내에서 이들의 안전과 복지를 고려하는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착취형 산업 아래 존재하는 말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용도에 따라 이용되다 그 쓸모가 다하면 손쉽게 처분하는 물건과 같이 취급당합니다.

 

착취 위주 산업 속에서 고통받는 말들

 

흔히 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표적 이미지는 트랙을 힘차게 달리는 경주마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9년 기준 총 매출액 7조원이 넘는 경마 산업에서 경주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정작 경주마의 행복에 대한 고려는 없습니다.

 

말의 평균 수명은 25-35년 정도이나 경주마들의 평균 은퇴 시기는 2-4살에 불과합니다. 어린 나이에 은퇴한 퇴역 경주마들은 이후 승용이나 번식용으로 전환되거나 식용으로 도축 또는 안락사되며, 용도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기타 용도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2016~2020년까지 5년간 퇴역 경주마 용도를 확인한 결과 약 50%가 도축됐고40%는 승용, 번식용으로 전환됐으며, 10%는 그 용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말산업정보포털의 기록에 따르면 2021년에는 1,621마리의 퇴역마 중 약 25%에 달하는 405마리가 용도 미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용도 미정으로 분류된 말들은 퇴역 후 행적에 대한 형식적인 집계 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한 퇴역 후 교육이나 보호의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은 채 퇴역마의 절반 가량을 도축하는 행태도 문제입니다. 퇴역 경주마 중 약 70% 정도가 4세 이하의 아주 어린 나이에 은퇴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시 훈련시켜 승용으로 전환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충분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상당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말들을 보호할 시설도 없어 개인이 직접 구조에 나서지 않으면 대부분의 말들이 안락사 또는 식용으로 도축당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 승용으로 용도가 전환된 말들은 승마장 등에서 사람을 태우는 승용마로 살아갑니다. 은퇴 직후 죽임당하는 말들에 비하면 운이 좋아 보일 수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일부 열악한 승마장에서는 먹이 공급 조차 충분치 않으며 하루종일 사람을 등에 태우고 혹사 당합니다. 당연히 치료가 필요한 일이 발생한다해도 적절한 진료가 이루어질리는 만무합니다.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동안 이력 관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아픈 몸으로 마방 구석에 방치되거나 어딘가에서 몰래 도축당해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한 별밤과 올해 초 드라마 촬영장에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마리아주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이는 경주마 뿐 아니라 경주마에서 탈락하거나 승마 체험 등에 이용하기 위해 생산한 일반 승용마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경제성이 아닌 생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

 

동물자유연대가 충남 부여에서 진행한 말 구조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국내에서는 말 이력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칩을 통해 말의 정보를 기재하고는 있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소유자의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멀쩡히 살아있는 말을 폐사 신고해도 적발하기 어렵고, 병든 말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해 건강원 등에 보내도 제재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 있는 모든 말들이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닙니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관리비가 더 많이 나가더라도 이해할만큼 진심으로 말을 사랑하는 마주를 만났거나 운좋게 평생 보호해줄 사람에게 구조되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말도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처우가 오로지 운에 맡겨져있다는 사실입니다.

 

매년 총 매출액을 조 단위로 기록하는 경마 산업 외에도 축산업, 승마 산업 등 말이 연관된 산업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말이 벌어들인 막대한 돈은 정작 그들의 복지를 위해 쓰여지지 않습니다. 말 산업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말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전수 조사를 통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과잉 생산 규제 및 이력제 도입 등 전 생애에 걸친 말 복지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말이 벌어들인 상금의 일부를 복지 사업에 할당하는 등 퇴역 후 또는 보호가 필요한 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재원과 시설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동물자유연대는 경주마를 비롯하여 국내에 존재하는 말들의 복지를 위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릇된 방향으로 몸집만 키워온 말 산업을 근본부터 개선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막대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껏 다수의 관심 밖에서 고통받았던 말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동물자유연대의 활동에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